본문 바로가기
인문여행/읽기 쓰기

박태웅 칼럼 '눈을 떠보니 선진국이 돼 있었다'를 읽고,

by 세바스티안 브란트 2022. 4. 5.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다. 앞보다 뒤에 훨씬 많은 나라가 있는 상태, 베낄 선례가 점점 줄어들 때 선진국이 된다. ‘세상의 변화가 이렇게 빠른데 어떻게 토론을 하는데 2년이나 쓰나?’라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 독일이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을 들여낸 백서를, 화들짝 놀라서 교과서처럼 읽고 베낀게 4년 전이다. 독일은 2년이나 시간을 들였지만, 우리보다 4년이 빨랐다. 긴 호흡으로 멀리 본 결과다.” (위 칼럼에서 인용, 칼럼 링크는 글 맨 아래 참조)

 

오랜만에 정말 통찰력 있는 칼럼을 읽었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여러 지표에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박태웅 씨는 정말 우리가 스스로를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는지 톺아본다. 그리고 진짜 선진국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 4가지를 제시한다. ‘정의하는 사회’, ‘데이터 기반의 사회’,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 ‘협상하는 사회’가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정의하는 사회’는 다른 나라가 내린 답을 쫓아가는 시대에서 질문하고 답을 내리는 세대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타당한 분석이다. 

    * 답을 내리기 혹은 정의하기를 내 식대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기준 세우기에 가깝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의 간부가 사익을 위하여 수억 원 대의 뇌물을 국가수반에게 준다고 했을 때, 적절한 처벌의 형량은 최소 몇 년이고, 감경사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등을 정하는 일이다. 현행법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의 양형 기준은 50억~300억 미만일 시 4~7년이라고 한다.(물론 이 경우엔 특정한 경제범죄를 왜 가중처벌해야 하는가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왜 4~7년이고, 왜 그것이 적당한지를 물으며, 타당한 이유를 대는 것이 정의 내리기와 기준 세우기이다.

푸코는 그리 길지 않은 그의 논문 계몽이란 무엇인가 What is Enlightenment?”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오늘날 정기간행물이 독자에게 질문할 때, 그 이유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 모두가 이미 갖고 있는 의견들을 모으기 위한 것이다. 거기선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울 가능성이 많지 않다. 18세기, 편집자들은 아직 해결책이 없던 문제들에 대해 대중에게 질문하길 선호했다. 나는 그러한 관행이 더 효과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더 재밌는 것(entertaining)은 확실하다.

아무튼 이러한 관습에 맞춰 178411월 독일의 정기간행물 Berlinische Monatschrift(베를린 월간지)계몽이란 무엇인가? Was ist Aufklärung?”이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출간했다. 그리고 칸트는 그 응답자였다.“

계몽에 대한 또 다른, 더군다나 2세기 후의 응답자인 푸코가 말한 그 관행은 유럽, 특히 독일에 아직 남아있는 듯하다. 유럽연합 그리고 독일정부는 녹서 Grünbuch 와 백서 Weißbuch, 그리고 흑서 Schwarzbuch 란 것을 (비정기적으로) 출간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이 제도의 목적은 특정 사안에 관한 정책 또는 법을 제정하기 위한 것이다.

    * 그러한 제도에 따라 독일정부는 2015년 4월 녹서 『노동 4.0』와, 이어서 2016년 11월 백서 『노동 4.0』를 내놓았다. 대략 2년 동안의 지난한 과정의 성과물이다. 말 그대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langsam, aber sicher!의 실천이다. 박태웅 씨의 말을 빌리면, “독일이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을 들여 낸 백서를, 화들짝 놀라서 교과서처럼 읽고 베낀게 4년 전”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독일 정부의 『Industry 4.0』이라는 백서에 자극을 받아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우선 내가 검색하기에는 백서 『Industry 4.0』는 없다. 백서 『노동 4.0』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베낀 그 백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불명확하다고 하더라도 그의 논지는 크게 흔들리지 않으리라. 어쨌든 Industry 4.0는 독일의 산학연 전문가들이 모여 새롭게 제시한 프레임이고, 그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에 혁명의 바람이 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문선우, 국제노동브리핑 2016년 9월호 43-44p)

 

이 사진은 이스탄불의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우르남무 (Ur-Nammu) 법전이다. 기원전 2100-2050 년 사이에 수메르 우르 왕조의 왕 우르남무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성문법이다. 그 시기는 함무라비 법전보다 대략 300년 앞서고, 모세의 십계명보다는 최소 400년가량 앞선 것이다. 살인, 강도, 간음 등을 금지하였고, 구체적 행위에 따라 구체적 처벌기준을 정하였다. 예를 들어 다른 이의 눈을 다치게 하면 은 1/2 를 물었고, 다리를 다치게 하면 10 쉐켈을 주어야 했다. 벌써 저때의 인류부터 무언가를 규정하고자 했다. 왜 남의 규정을 가져다 쓰기만 해야 하는가? 우린들 못하겠는가.

 

다시 말하면 아직 공식적인 해결책이 없는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함이다. 이때 녹서는 어떤 주제에 대한 질문거리, 생각거리, 제안안들을 담고 있고, 이것을 토대로 사회 전반에 걸쳐 컨설팅과 토론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논의과정을 요약하고 정리하고 거기서 결과를 도출해내는 백서가 발간된다. 흑서는 주제와 관련된 안 좋은 사례들의 모음집이다.

    * 색깔들의 유래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국가적 행정문서들은 지역별로 색이 다른 표지를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독일국가의 문서는 하얀색이었고 이탈리아의 것은 녹색이었다. 훗날 이러한 관습이 그 의미를 달리하여 지금과 같이 내용적으로 분리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것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사회 전체가 사회의 문제에 질문하고 토론하며 올바른 기준을 세우는 문화와 제도를 길러 내야만 할 것이다. 합의 없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다가 시간만 축낼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묻고 답하기 위하여 시간을 공들여 사용할 것인가? 적어도 이 질문에 대답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박태웅 칼럼]눈을 떠보니 선진국이 돼 있었다

BTS는 한국어로 부른 노래로 빌보드 1위를 거뜬히 해낸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는 로컬이잖아”라고 말하며 천연덕스럽게 감독상과 작품상을 포함해 4개의 아카데미 트로피를 거머쥐

www.inews24.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