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 간 식당에서 나는 우선 제육볶음을 시켜 먹는 버릇이 있다. 고등학교 때 야자 끝나고 몰래 먹었던 "참참참"의 두루치기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였다. 아주 매콤하고 조미료 많이 들어간 자극적인 맛. 고기도 가장 싼 돼지 뒷다릿살에다가 채를 썬 당근과 어떤 채소가 두루 볶아진 야식이었다. 그나마 이와 비슷한 맛을 발견한 것은 남부터미널역과 방배 사이에 위치한 어느 허름한 분식점이었는데, 또 먹으러 재차 방문을 시도했지만, 코로나의 여파 때문인지 매번 문이 닫혀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잠깐 들린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보다 거의 똑같은 제육볶음을 맛보게 되었다. 먹고 정말 힘이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SEOUL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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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도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날이 괴테 어르신의 생신 (8.28.)이었다. 독일문학의 그 상징을 쫓아 독일까지 왔는데, 그분의 생가를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272번째 생신을 맞이한 그가 태어난 곳을 가보니, 파티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대개 머리가 희끗하신 분들이었다. 알아보니 '자유독일대교구Freies Deutsche Hochstift' 회원에 한에서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맞은편 도로에 서 조금이나 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기웃이 서성였다. Herzlichen Glückwunsch zum Geburstag, Herr Goe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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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입대하기 전 친구와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그때는 정말 잠시, 한 네다섯 시간 정도 프랑크푸르트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왔던 유로타워를 다시 오니 옆자리는 허전하고, 그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2주간의 유럽여행 동안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으려고 의심쩍은 사람이 접근한다 싶으면 서로 "진돗개"를 발령해주었는데, 기본군사훈련을 받을 때 그 명칭을 또 배우면서 혼자 즐거웠던 생각이 난다. 어느덧 나는 주위를 경계하지 않고도 낮이든 밤이든 거리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수록 보고 싶은 사람들이 선명해진다. 아직 한국어가 그립고, 친구들이 보고 싶다. 소주를 제 돈 주고 마시긴 아깝고, 돈 안 내는 밑반찬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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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의 불행의 이유를 해야 할 것을 미루는 습관과 그 뒤에 따르는 핑계에서 찾았다. 진작에 괴테는 오해 Mißverständnisse와 더불어 나태함 Trägheit가 속임수 List와 악의 Bosheit보다 세상에 더 많은 잘못들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개인적으로 베르테르가 자살한 근원적인 이유도 나태함에 있다고 본다. 반면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메피스토가 그가 원하는 것을 모든 이루어주는 대신 만약에 자신이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참 아름답구나!"라고 말하면 영혼을 팔겠다는 계약을 맺었다. 파우스트가 끝에 가서 결국 그 말을 외쳤음에도, 그의 영혼을 가져가려는 메피스토를 하나님의 천사들이 내려와 막아내고 그를 구원해주었다. 베르테르는 어느 정도 해보고 포기하였지만, 파우스트는 말그대로 해볼 거 다해보며 끝장을 보려고 했다. 전자가 30여쪽에 불과한 반면, 후자는 400쪽을 넘는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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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괴테는 파우스트의 목소리를 빌려 그리스어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에 말 (λόγος, logos)이 있었다"를 독일어로 "태초에 행위 Tat가 있었다"라고 번역했다고 생각한다. 얕은 생물학 지식을 덧붙여 유기체와 무기체의 차이는 신진대사의 유무에 있다고 하는데, 즉 움직이느냐(유변) 움직이지 않느냐(불변)의 문제와 유사하다. 괴테는 파우스트의 장르를 "비극 Tragödie"이라 하였다. 오이디푸스로 유명한 이 비극은 정해진 운명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인물을 다룬다. 나는 사주팔자나 별자리 등을 믿지 않기에 내 정해진 운명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다만, 생명이 죽는다는 그 숙명은 잘 알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 속에서 나에게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면 그 슬픈 굴레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괴테가 내린 결론이라 해석한다. 나름의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것. 한가한 화요일 정오, 지나가는 이에게서 풀내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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