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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 파울 첼란, 비의 라일락 Paul Celan, Regenflieder

by 세바스티안 브란트 2022. 3. 15.

2018년 4월 18일, 청계산 입구역 앞 라일락 나무 

 

    라일락 (학명: Syringa vulgaris)- 연보랏빛 꽃과 은은한 향은 라일락을 연상시키는 감각적 심상들이다. 그 중에서도 라일락의 향은 그 곁을 지나가는 이들의 걸음을 한번쯤 멈추게 할 정도로 신비롭다. 그래서인지 이문세에서 저 멀리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와 첼란(Paul Celan 1920-1970)까지 그 향을 노래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 볼 수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한 가지 특징-내가 아는 한 릴케는 제외하고-은 라일락의 향과 그리운 여인이 연관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인상적인 향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묘하게 어울릴 때, 우리는 그 과거를 그 냄새와 함께 추억하곤 한다. 아마 라일락 향이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다웠고 그래서 지금은 그리운 그 추억과 잘 어울리는 게 아닐까?


    이렇게 라일락은 우리의 시각 그리고 특히 후각을 만족시켜준다. 그렇다면 미각, 즉 라일락의 맛은 어떠할까? 라일락의 맛에 대해선 "첫사랑의 맛을 느끼고 싶으면 라일락 잎을 씹어보세요"라는 말이 있다. 부연설명없이도 첫사랑을 해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맛을 유추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식물학자에 버금가는 지식을 지니고 있었던 첼란 역시 이 맛을 알고 있었나보다. 그는 라일락의 향과 더불어 그 맛을 자신의 시 속에 어둡게 녹여냈다. 아마 우리 각자에게도 라일락과 같이 옛사랑을 추억하게 하는 특별한 향이 있으리라. 그 향을 불러내며 이 시를 음미해보는 게 어떨까?

 

 

비의 라일락 - 파울 첼란

비가 온다, 누이여: 하늘의
기억들은 그녀의 쓴맛을 여과한다.
라일락, 외로이 시간의 향기 앞에,
젖은 채 두 사람을 찾는다, 껴안은 채
문 열린 창문에서 정원을 바라보았던

지금 나의 외침이 빗빛을 부채질한다.

나의 그림자는 창살보다 더 높이 자란다.
그리고 나의 영혼은 물빛광선이다.
궂은 날씨 속에서 그것이 너를 후회하게 하는가, 너 어둠이여,
내가 네게서 전에 낯선 라일락을 훔쳤다는 것이?

 

 

REGENFLIEDER - Paul Celan

 

Es regnet, Schwester: die Erinnerungen
des Himmels läutern ihre Bitterkeit.
Der Flieder, einsam vor dem Duft der Zeit,
sucht triefend nach den beiden, die umschlungen
vom offnen Fenster in den Garten sahn.

Nun facht mein Ruf die Regenlichter an.

Mein Schatten wuchert höher als das Gitter
und meine Seele ist der Wasserstrahl.
Gereut es dich, du Dunkle, im Gewitter,
daß ich dir einst den fremden Flieder sta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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