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a.
“오직 또 하나의 신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獨 원문】
“Nur noch ein Gott kann uns retten”
4b.
1966년 9월 23일 마르틴 하이데거와 슈피겔의 대담
【獨 원문】
SPIEGEL-Gespräch mit Martin Heidegger am 23 September 1966
4c.
슈피겔 : 하이데거 교수, 우리는 당신의 철학 작품이 당신의 삶 중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은 안 좋은 사건의 그림자로 그늘져 있다고 늘 단언해왔습니다. 한 번도 밝혀지지 않은 그 사건들로요.
【獨 원문】
SPIEGEL : Herr Professor Heidegger, wir haben immer wieder festgestellt, daß Ihr philosophisches Werk ein wenig umschattet wird von nicht sehr lange währenden Vorkommnissen Ihres Lebens, die nie aufgehellt worden sind.
4d.
하이데거 : 당신은 33년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 히틀러의 독재 하에 국가사회주의노동당(NSDAP : die 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을 지배하였다.
【獨 원문】
HEIDEGGER : Sie meinen Dreiunddreißig?
4e.
슈피겔 : 네, 그 전과 그 후입니다. 우린 그것을 더 큰 맥락 속에 세워두고, 그로부터 중요해 보이는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가령, 철학이 현실에, 또한 정치적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들이 있을까요?
【獨 원문】
SPIEGEL : Ja, davor und danach. Wir möchten das in einen größeren Zusammenhang stellen und von daher zu einigen Fragen kommen, die als wichtig erscheinen, etwa : Welche Möglichkeiten gibt es, von der Philosophie her auf die Wirklichekit, auch auf die politische Wirklichkeit, einzuwirken?
4f.
하이데거 : 그건 정말 중요한 물음이네요, 내가 그것에 답할 수 있을까요?
【獨 원문】
HEIDEGGER : Das sind schon wichtigen Fragen, ob ich sie alle beantworten kann?
4g.
하지만 우선은 내가 총장이 되기 전에 어떠한 방식으로도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말해야겠습니다.
【獨 원문】
Aber zunächst muß ich sagen, daß ich mich politisch vor meinem Rektorat in keiner Weise bestätigt habe.
4h.
1932-33년 사이의 겨울학기에 나는 휴가를 얻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나의 오두막에서 보냈습니다.
【獨 원문】
In dem Wintersemester 1932/33 hatte ich Urlaub, und die meiste Zeit war ich oben auf meiner Hütte.
4i.
슈피겔 : 그러고 나서 어떻게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이 되었던 겁니까?
【獨 원문】
SPIEGEL : Wie kam es dann dazu, daß Sie Rektor der Universität Freiburg wurden?
4j.
하이데거 : 1932년 12월, 나의 이웃이자 해부학 교수인 폰 묄렌도르프가 총장으로 뽑혔습니다.
* 빌헬름 폰 묄렌도르프(1877~1944)는 -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 1932년 말에 2년 임기의 총장직에 선출되었다. 1933년 초에 바덴주 정부의 명령으로 대학 내 공무직을 수행하던 모든 유대인에 대해 강제로 휴가 조치가 시행되었는데, 이때 그는 이것을 최대한 늦춰서 실행하고자 했다. 이러한 이유로 친나치적 언론의 공격을 받았으며, 1933년 4월 15일에 취임했으나 그로부터 5일 뒤인 20일에 퇴임하게 되었다. 그 이후, 묄렌도르프의 제안으로 하이데거가 새로운 총장이 되었다.
【獨 원문】
HEIDEGGER : Im Demzemer 1932 wurde mein Nachbar von Möllendorf, Ordinarius für Anatomie, zum Rektor gewählt.
4k.
여기 대학의 신임총장 취임날은 4월 15일입니다.
【獨 원문】
Der Amtsantritt des neuen Rektors ist an der hiesigen Universität der 15. April.
4l.
우리는 1932-33년 사이의 겨울학기에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특히 대학의 상황에 대해서, 일부는 학생들의 가망 없는 상태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獨 원문】
Wir sprachen im Wintersemester 1932/33 öfters über die Lage, nicht nur über die politische, sonder im besonderen über die der Universtitäten, über die zum Teil aussichtslose Lage der Studierenden.
4m.
나의 판단은, 내가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한에서, 현실적으로 아직 활발한 건설적인 힘을 가지고서 미래의 발전을 시행할 것을 시도할 단 하나의 가능성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獨 원문】
Mein Urtiel lautete : Soweit ich die Dinge beurteilen kann, bleibt nur noch die eine Möglilchkeit, mit den aufbauenden Kräften, die wirklich noch lebendig sind, zu versuchen, die kommende Entwicklung aufzufangen.
4n.
슈피겔 : 말하자면 당신은 독일대학의 상태와 독일의 정치적 상황 간의 관계를 통틀어 보았다는 것이죠?
【獨 원문】
SPIEGEL : Sie sahen also einen Zusammenhang zwischen der Lage der deutschen Universität und der politischen Situation in Deutschland überhaupt?
4o.
하이데거 : 나는 당연히 1933년의 1월과 3월 사이에 있었던 정치적 과정들을 주의 깊게 관찰했고 그에 대해 젊은 동료들과 기회가 닿는 대로 이야기했습니다.
<1933년 1월과 3월 사이의 주요 정치적 사건 경과> 1933. 1. 4. : 아돌프 히틀러와 프란츠 폰 파펜이 정권 위임을 위한 준비를 위해 합의함. 1933. 1. 30. :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으며 제국수상으로 임명됨. 1933. 1. 31. : 아돌프 히틀러의 권력장악에 대한 유일하고 큰 규모의 스트라이크가 뫼싱엔에서 일어남. 1933. 2. 1. : 히틀러의 요구에 따라 제국의회가 제국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에 의해 해산됨. 1933. 2. 3. : 히틀러가 처음으로 국방군의 사령관들 앞에서 2시간 30분동안 연설함. 1933. 2. 4. : 독일민족의 보호를 위한 제국대통령의 법령이 공포됨. 기본권, 특히 집회와 언론의 자유가 제한됨. 1933. 2. 20. : 선거운동을 위한 재정지원에 관해서 히틀러와 기업인들의 밀회가 있었음. 1933. 2. 27. : 제국의회 방화 사건이 있었음. 1933. 2. 28. : 제국의회에 관한 법령이 공포됨. 1933. 3. 3. : KPD(Kommunistische Partei Deutschlands, 독일공산당)의 대표인 에른스트 텔만이 체포됨. 1933. 3. 4. : SPD(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독일사민당) 신문인 “포어베르츠(진격)”의 마지막 발행. 1933. 3. 5. : 제국의회 선거에서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이 43% 이상의 득표를 달성함. 1933. 3. 13. : 민족계몽과 선전을 위한 부처가 설립됨. 1933. 3. 21. : 포츠담의 날(새로 선출된 제국의회 임기가 시작됨. 포츠담에 있는 수비대 교회에서 국가적 의식이 거행됨.) 1933. 3. 22. : 첫 번째 수감자들이 새로 설립된 다하우의 집단수용소로 보내짐. 1933. 3. 23. : 독일 제국의회가 정부에 전권을 위임한다는 수권법을 가결함. 1933. 3. 31. : 반 데어 룹베 법이 제국공보에 발표됨. 이는 제국의회방화에 대하여 소급력을 인정하는 처벌법임. |
【獨 원문】
HEIDEGGER : Ich verfolgte die politischen Vorgänge freilich zwischen Januar und März 1933 und sprach darüber auch gelegentlich mit jüngeren Kollegen.
4p.
그러나 나의 작업은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의 광범위한 해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獨 원문】
Aber meine Arbeit galt einer umfangreicheren Auslegung des vor-sokratischen Denkens.
4q.
나는 여름학기의 시작과 동시에 프라이부르크로 돌아갔습니다.
【獨 원문】
Ich kehrte mit Beginn des Sommersemesters nach Freiburg zurück.
4r.
그 사이 폰 묄렌도르프 교수가 4월 16일에 총장직을 시작했습니다.
【獨 원문】
Inzwischen hatte Professor von Möllendorf am 16. April sein Amt als Rektor angetreten.
4s.
약 2주 후 그는 그 당시의 바덴의 문화부청장에 의해 그의 직위에서 해임되었습니다.
【獨 원문】
Knapp zwei Wochen später war er seines Amtes durch den damaligen badischen Kultusminister enthoben.
4t.
묄렌도르프 총장이 소위 반유대주의 포스터를 대학 내 게시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사실이 장관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추측컨대 바라 왔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獨 원문】
Den vermutlich erwünschenten Anlaß zu dieser Entscheidung des Ministers gab die Tatsache, daß der Rektor verboten hatte, in der Universität das sogenannte Judenplakat auszuhängen.
- 언어와 저술은 민족에 뿌리박고 있다. 독일민족은 자신의 언어와 저술이 독일의 민족성의 순수하고 왜곡되지 않은 표현임에 책임을 지고 있다.(Sprache und Schrifttum wurzeln im Volke. Das deutsche Volk trägt die Verantwortung dafür, daß seine Sprache und sein Schrifttum reiner und unverfälschter Ausdruck seines Volkstums sind.)
- 오늘날 저술과 독일 민족성 간의 모순의 틈이 벌어져 있다. 이러한 상태는 굴욕이다.(Es klafft heute ein Widerspruch zwischen Schrifttum und deutschem Volkstum. Dieser Zustand ist eine Schmach.)
- 언어와 저술의 순수성은 너에게 놓여있다! 너의 민족은 이를 성실히 지키기 위해서 너에게 언어를 위탁했다.(Reinheit von Sprache und Schrifttum liegt an Dir! Dein Volk hat Dir die Sprache zur treuen Bewahrung übergeben.)
- 우리의 가장 위험한 적대자는 유대인과 유대인에 예속된 자들이다.(Unser gefährlichster Widersacher ist der Jude und der, der ihm hörig ist.)
- 유대인은 단지 유대적으로만 사고할 수 있다. 유대인이 독일어를 쓴다면, 그는 거짓을 말한다. 독일어를 쓰지만 비독일적으로 사고하는 독일인은 배반자이다. 이외에도 비독일적으로 말하고 쓰는 학생은 생각이 없으며 그의 과제에 불성실하게 된다.(Der Jude kann nur jüdisch denken. Schreibt er deutsch, dann lügt er. Der Deutsche, der deutsch schreibt, aber undeutsch denkt, ist ein Verräter. Der Student, der undeutsch spricht und schreibt, ist außerdem gedankenlos und wird seiner Aufgabe untreu.)
- 우리는 거짓말을 솎아내고자 한다, 우리는 배반에 낙인을 찍고자 한다, 우리는 학생들을 위한 생각없음의 장소가 아닌, 훈육과 정치적 교육의 장소를 원한다.(Wir wollen die Lüge ausmerzen, wir wollen den Verrat brandmarken, wir wollen für den Studenten nicht Stätten der Gedankenlosigkeit, sondern der Zucht und der politischen Erziehung.)
- 우리는 유대인을 낯선자들로서 조심하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는 민족성을 진지하게 다루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검열에 대해 요구한다 : 유대적 작품들은 히브리어로 발행된다. 그것들이 독일어로 발행된다면, 그들은 번역이라 표시되어야만 한다. 독일어 문자의 오용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개입이 요구된다. 독일어 문자는 단지 독일인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 비독일적 정신은 공식도서들에서 솎아내져야 한다.(Wir wollen den Juden als Fremdling achten und wir wollen das Volkstum ernst nehmen. Wir fordern deshalb von der Zensur: Jüdische Werke erscheinen in hebräischer Sprache. Erscheinen sie in deutsch, sind sie als Übersetzung zu kennzeichnen. Schärfstes Einschreiten gegen den Mißbrauch der deutschen Schrift. Deutsche Schrift steht nur Deutschen zur Verfügung. Der undeutsche Geist wird aus öffentlichen Büchereien ausgemerzt.)
- 우리는 독일 학생들에게 독립적인 인식과 결정을 할 의지와 능력을 요구한다.(Wir fordern vom deutschen Studenten Wille und Fähigkeit zur selbständigen Erkenntnis und Entscheidung.)
- 우리는 독일 학생들에게 독일어의 청결유지를 위한 의지와 능력을 요구한다.(Wir fordern vom deutschen Studenten den Willen und die Fähigkeit zur Reinerhaltung der deutschen Sprache.)
- 우리는 독일 학생들에게 유대적 지성주의의 뛰어넘을 의지와 능력, 그리고 그와 연관된 독일정신의 생활 속에서 자유적 쇠퇴현상을 극복할 의지와 능력을 요구한다.(Wir fordern vom deutschen Studenten den Willen und die Fähigkeit zur Überwindung des jüdischen Intellektualismus und der damit verbundenen liberalen Verfallserscheinungen im deutschen Geistesleben)
- 우리는 학생들과 교수들 중 독일 정신 안에서 보장된 생각에 따라 선택된 자들을 요구한다.(Wir fordern die Auslese von Studenten und Professoren nach der Sicherheit des Denkens im deutschen Geiste.)
- 우리는 독일 대학이 독일 민족성의 반석이자 독일정신의 힘에 의한 투쟁의 장소가 되기를 요구한다.(Wir fordern die deutsche Hochschule als Hort des deutschen Volkstums und als Kampfstätte aus der Kraft des deutschen Geistes.)
< 내용요약 (Zusammenfassung) > 1. 총장으로 취임하기 전, 하이데거는 독일의 정치적 상황과 대학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 2. 이와 관련해서 그는 발전을 위해서 "단 하나의 가능성밖에 남지 않았다고" 평가를 내렸음. 3. 위 내용으로는 그 가능성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음. 4. 추가로 전 총장이었던 묄렌도르프가 반유대주의 포스터 게시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사실을 언급함. |
※ 원문출처 : https://bublitz.org/wp-content/uploads/2018/03/Heidegger-Spiegel-31-05-197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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