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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에 관해서』(「게르마니스틱」2019년 3호권 서문)

by 세바스티안 브란트 2020. 12. 22.

      아래의 번역문은 재앙과 문학의 관계를 주제로 삼은 「게르마니스틱」 2019년 3호권의 서문이다.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더욱이 재앙에 관한 관심과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에 있어 문학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 내용이 인간에 의해 촉발된 재앙보다는 자연력에 의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재앙에 관해서』는 앞선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선례에 자극을 받음으로써 21세기에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인재(人災)를 둘러싼 문학적 작업과 재앙과 관련된 주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필요성 역시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콘스탄체 바움과 알렉산더 코세이나  Contanze Baum, Alexander Košenina

 

재앙에 관해서   Katastrophen

서문   Vorwort

 

Ⅰ. 재앙의 순환

 

      재앙은 인류와 문화사의 특수한 부분이다. 재앙은 위협과 사건의 시나리오로서 문화적 기억 속에 의미 있는 한 획을 긋는다. 문화기억의 한 부분으로서 재앙은 세계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의 출발점이자 전환점을 구성하고, 이와 동시에 재앙은 감정적-도덕적, 사회적-정치적 또는 기술적-경제적 측면과 마찬가지로 미신적-종교적 차원들을 다루고 연결할 수 있는 구전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게르하르트 라우어(Gerhard Lauer)와 토르스텐 웅어(Thorsten Unger)는 “재앙이 있는 곳에 미디어도 있다”라는 말을 특히 18세기에 대한 그러한 재앙논쟁의 막대한 영향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증명해냈다. 디지털-글로벌 네트워크, 기록 그리고 매스미디어 시대에 재앙적 세계와 자연사건에 대한 뉴스는 바람처럼 빠르게 그리고 재앙과 동시간적으로 퍼지고 있다.

 

      아포칼립스는 그 고유의 미디어적 추월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지진, 이상기후, 화재, 화산폭발 또는 쓰나미에 대한 뉴스, 사진 그리고 입장은 세계적 규모의 야합과 필적한다. 동시에 사진과 텍스트에서 반응을 원하는 다양한 요구와 동기부여가 작동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것들은 - 경험적으로 수집된 불행한 사건에 대한 데이터의 평가와 리스트 그리고 이와 관련된 통계학의 개선행렬에서 볼 수 있듯이 - 재앙분석에 있어서 이성적으로 엄밀한 지식획득에 기여한다. 다른 한편, 이는 화젯거리와 호기심 그리고 기금모금과 정서적 충격(현실참여 또는 자발적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민과 동정을 유발한다. 또한 재앙에 대한 묘사와 이를 다루는 미디어의 방식에 있어서, - 예를 들어 희생자의 노출에 대한 문제와 같은 - 윤리적 경계선 역시 논의될 수 있다.

  * 아포칼리스 : 고대 그리스어로 ἀποκάλυψις(apokálupsis)는 "베일을 벗김", "덮개를 벗김" 또는 "드러남"을 의미했다. 기독교에서 요한묵시록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며 '신의 계시' 더 나아가 '세상의 종말'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위 문단의 첫 문장을 풀어서 설명하자면, 오늘날 재앙에 관한 소식의 전파가 광범위하고 빠르게 이루어지게 됐음을 지적하고 있다. 

 

      재앙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유사재앙적인 세계는 위험이 도사리거나 거대한 형상을 띄는 곳을  순식간에 알아낸다. 실제 우리가 재앙에 참여할 수 있는 직접성은 생생하게 작동한다. 페터 우츠(Peter Utz)는 이러한 맥락에서 ‘재앙의 이력’에 대해 말한다. 미디어의 기록과 전파가능성은 한편으로 재앙담론의 붐을 일으키고,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근대적 기록절차의 도움으로 기후변화의 과정 속에서 증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재앙 그 자체와 같다. 게르노트(Gernot)와 하르트무트 뵈메(Hartmut Böhme) 또한 이러한 점을 1996년의 4가지 요소에 대한 그들의 심도 깊은 연구에서 강조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은 오늘날 (자연)재앙이 더는 어떠한 세계관도 뒤흔들 수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러한 테제가 9ㆍ11 이후 그리고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uture)’에서의 ‘청소년 환경보호운동’과 관련해서 여전히 유효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남아 있다. ‘성장의 한계’(1972)에 대한 로마클럽의 부정적인 진단과 - 특히 현재 진행 중인 ‘기후 변화’는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견고하게 받아들여진 -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고의 세계에 대한 라이프니치의 낙관주의에 의문을 품게 한다. 지금, 동시적으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에 의해 그러한 낙관주의에서 벗어나라는 요구가 새로이 촉구되고 있다. 재앙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구(舊)/신(新) 문화/문학사의 개별 케이스 스터디에 대한 해석 담론장 안에서의 재앙에 대한 문학적 작업의 변수들을 밝혀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그러한 작업들은 대개 기본적인 자연계의 힘을 다루는 데 주력한다.

  * 근대초기의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치(1646~1716)존재하는 세계 중에서 최고의 세계(Die beste aller möglichen Welten oder Best of all possible worlds)’라는 표현을 가지고 존재하는 세계가 신이 창조할 수 있는 최고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흔히들 이를 두고 라이프니치적 낙관주의라고 말한다. 그는 신정론(Théodicée)(1710)에서 신의 정당함을 옹호하기 위해서 이러한 논증을 펼쳤다. 이를 단순화시키면 다음과 같다 : 신은 전지전능하고 그의 선하심은 무한하다. 그러한 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했다. 신은 이와는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거나 그 어떤 세계를 창조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신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어떠한 세계가 최선인지 알았으며, 그것을 창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의 선하심은 무한하기 때문에 그는 그러한 세계를 창조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신이 창조한, 이 존재하는 세계는 모든 가능한 세계 중에 최고의 것이다.

 

Ⅱ. 재앙의 개념

 

      문학적 현상으로서 ‘재앙’을 수용하고 확연한 경계를 부여하는 일은 사실과 허구, 경험주의와 시나리오화의 갈등양상의 맥락에서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힘이 자연계의 힘을 부르고 동시에 광범위한 담론의 지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범위는 홍수 또는 지옥불과 같은 구원의 역사와의 연관성에서부터 자연과학의 인식론에까지 이른다. 1755년 11월 1일의 리스본 지진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재앙연구는 의견이 일치한다. 그 지진은 문화적 쇼크경험으로서 재앙경험에 대한 오늘날 우리의 통념에 각인을 남겼고, 다양한 반응과 해석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전범적인 재앙-미디어사건으로서 문화사에 새겨졌다. 또한 여기서 개념사적으로도 다음과 같은 연관성이 형성된다.

 

1755년 11월 1일에 일어난 대지진이 대형화재와 해일과 함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강타함. 이로 인해 전체도시가 거의 파괴되었으며 30,000명에서 100,000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기록함. 지진강도는 8.5도에서 9도 사이였다고 함. 정치ㆍ문화ㆍ학문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유럽 역사상 가장 피해가 심했던 자연재해 중 하나로 남음.

 

"말하자면 늦어도 리스본 지진과 함께 독일어권 지역에서 재앙이라는 개념은 자연적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올라프 브리제(Olaf Briese)와 티모 귄터(Timo Günther)는 재앙의 개념사적 전환을 모범적으로 재구성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재앙의 개념은 드라마이론의 기본공식과 - 희ㆍ비극 여부와 상관없이 - 극적인 갈등의 시발점 그리고 동시에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카타르시스(katharsis)의 작용원리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오늘날의 통념에 반해서 “재앙은 감정의 진정, 안정, 누그러짐”이었다고 브리제와 귄터는 강조한다. 고대에는 그 의미가 드라마의 마지막 장 또는 강조로서 전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품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정적으로 확장됐다. 19세기 중반 즈음에 처음으로 자연재앙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음이 증명됐다.

 

  * 카타르시스(κάθαρσις, kátharsis) : 고대 그리스어로 "cleansing(깨끗이 함, 정화)" 또는 "purging(제거함, 안 좋은 생각 또는 감정 등을 몰아냄)"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극적이고 감정적인 의미에서 만든 단어다. 그는 『시학(peri poietikes)』에서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라고 말하였다. 이 책을 번역한 천병희의 『시학(詩學)』(문예출판사, 2014, 49~50p)을 보면 다음과 같은 각주가 카타르시스를 부연설명해주고 있다. "카타르시스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데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보아 카타르시스는 '감정의 정화'를 의미한다는 윤리적 견해와 '감정의 배설'을 의미한다는 의학적 견해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바로크 시인들, 프랑스 고전주의 시인들과 더불어 레싱(Lessing, 『Hamburgische Dramaturgie』, 74~83편 참조)이 주장하는 견해이고, 후자는 베르나이스(Jakob Bernays, 『Grundzüge der verlorenen Abhandlung des Aristoteles über die Wirkung der Tragödie』 참조)가 주장하는 견해다. 금세기에 들어와서도 여러 학자들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나 카타르시스의 본질에 관한 연구는 비극 그 자체의 본질에 관한 연구에 비해 퇴조하고 있는 편이다." 

 

  * 재앙(Katastrophe)의 어원 : 고대 그리스어 καταστροφή(katastrophḗ)를 기원으로 두고 있다. "방향을 전환함"을 의미했으며, 특히 비극의 줄거리에서 영웅을 몰락시키는 결정적인 사건의 전환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이를 통해 비극의 감정적 효과, 즉 카타르시스가 산출되기 때문에 - 브리제와 귄터가 주장하는 것처럼- 수용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Ⅲ. 재앙의 증언

 

      드라마를 넘어선 재앙의 인지, 묘사 그리고 해석이 어떠한 경우라도 인류사의 아카이브에 저장되기 위해선 보증된 방식의 증언을 필요로 한다. 재앙을 이야기할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난파사건에는 난파로 조류된 사람들이 필요하고, 기상악후에는 산책하던 사람이 필요하고, 아포칼립스에는 마지막 생존자가 필요하다. 저마다의 미디어에서 전파된 재앙경험은 사실에 기초한 미적인 형태부여를 동반하고 있는, 기록하고자 하는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 본 호에 수록된 기고문들이 보여주듯이, 그 때의 재앙적 순간 자체는 단지 재앙에 대한 글쓰기 속에 있는 순간일 뿐이다. 재앙을 배열하고 재앙의 결과로서 논의될 가치가 있고 생산적일 것이라 평가되는 기본조건들은 재앙이야기에 있어 단순히 파괴적인 것만이 아니라 결정적인 요소로서 드러났다. 그렇기 때문에 재앙을 통해서 유토피아 또는 디스토피아적인 묘사공간이 유도될 수도, 파괴될 수도 있다. 그 공간에서는 이따금 ‘그 이후’로의 방향전환이 극단적 사건의 묘사에 마주해서 지배적이거나, 이야기의 신빙성에 대한 문제가 전면으로 내세워진다. 그에 따라 재차 텍스트 속에서 반대운동과 반대상이 재앙경험에게 공급된다.

 

      ‘사슬에서 풀려난 자연. 1600년 이후 재앙의 형상(Entfesselte Natur. Das Bild der Katastrophe seit 1600)’이란 타이틀 아래 수많은 회화작품과 사진을 모아둔, 2018년 함부르크 쿤스트할레의 최근 전시회는 재앙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작품 모두는 재앙의 시나리오에 헌정되었고, 그와 함께 폭 넓은 시공간을 펼쳐낸 파노라마를 형성했다. 모음전의 리더는 서문에서 일반화하여 힘주어 말할 때 미적인 작업 자체를 재앙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강조하는 수준에까지 나아갔다. “실제로 형상은 재앙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형상은 재앙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전시회의 학술 큐레이터였던 요르그 트렘플러(Jörg Trempler)도 그러한 테제를 대변했다.

 

"재앙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기저가 되는 사건이 재앙으로 특징지어지거나 또는 그렇게 묘사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작업이 부재하면 그것은 재앙이 아닙니다."

 

      재앙이 재앙이길 시작하는 곳은 재앙을 새기는 작업에 달려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수행적인 측면에 너무 책임을 부과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어떠한 현상이 재앙적이라고 합의되지 않은 채, 불, 물, 바람 또는 땅을 움직이는 극단적인 차원의 자연과 연관된 사건은 부지불식간에 발생할 수도 있다. 전해지지 않고 아마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배제된 재앙의 역사도 포함하는 망각과 추방의 문화 역시 기억의 문화에 속한다. 또한 이러한 점은 미래와 종말의 시나리오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근본적인 힘이 인간 문명(또는 드문 방식으로 거주지)을 들이 닥칠 때, 극단적인 자연사건은 재앙으로 인지된다. 이와 관련해서 재앙은 말하자면 목격자, 희생자, 생존자를 필요로 한다. 이로써 ‘재앙의 문화적 형성’이 대두된다. 이는 파괴 현상의 분석을 통해 창조적 가능성을 방출하고, 이와 동시에 순전히 기록에 의한 또는 단지 특징적인 기능 너머를 가리킨다. 그에 따라 재앙은 상이한 생산적 반응을 야기시킨다. 여기서는 그러한 현상을 상세히 분석한, 본보기로 선별된 연구들을 참고 삼아 연구를 개괄하는 것만이 가능할 것이다.

 

Ⅳ. 재앙연구

 

      페터 우츠는 재앙에 관한 문학사적 작업과 관련하여, 본 호의 출발점이 될 실질적인 연구의 필수조건에 주목한다. 본보기가 되는 모델들과 변수들에 대한 문화사적 문예학적 분석을 더 커다란 해석학적 맥락으로 옮겨가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프랑수아 발터(François Walter)의 문화사 속 문학적 예시들의 상당부분이 이러한 작업에 도움이 됐다.

 

      수많은 연구들이 최근 10년 간 역사학, 인류학, 환경사학, 철학 그리고 사회학에서 재앙담론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이 촉진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회연구는 재앙을 단일연구와 연구모음집의 중점으로 내세웠다. 소방/안전분야의 발전은 내진설계형 건축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 문제제기와 역사적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다사다난한 재앙의 재구성 문제와 더불어, 대처전략 또는 예방이 계속해서 중요해지고 있다. 문학적 분석에서도 그러한 주제가 선택되고 있다.

 

      울테 운디네 프룀밍(Urte Undine Frömming)은 오늘날의 재앙지역을 전 세계적으로 조망한 그녀의 연구들에서 재앙의 세계사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제시한다. 최근에 니콜라이 하닉(Nikolai Hannig)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 ‘계산된 위험들. 1800년 이후의 자연재앙과 예측(Kalkulierte Gefahren. Naturkatastrophen und Vorsorge seit 1800)’에서 사회역사적 맥락과의 연결점을 포괄적으로 제시했다. 그렇지만 사실 전달 그 이상이어야만 하는 연구체에 대한 올바른 비판적 시각도 함께 있었다. 도입부에서 그는, “자연적 위험을 다루는 방법은 지금껏 너무나 다양하게 존재해왔다”라고 말한다. 하닉은 재앙에 맞선 방어대책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시에 불가피한 극단적 경험의 역설을 강조한다. 자연이 그것의 위험지속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곳에서만, 예측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긴장 내지 필요성이 싹튼다. 다양한 변종의 재앙에 대한 습득은 늦어도 계몽주의 이래로 학문과 긴밀히 연결해왔다.

 

"지질학 작업에서 나온 이미지들은 학술적으로 연구된 현상을 적어도 시각적으로 관찰자의 생활환경 속으로 되가져왔다. 그 이미지들은 자연사건을 인간과 무관한 영역에서 형상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은 형식화, 감정화, 변용 그리고 위협에 투자했다. 그 속에서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사이의 시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드러났다. 예술과 학문 간의 긴밀한 관계. 이와 상응하게 지질학자의 이미지들이 실제로 발생한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들은 추가적으로 각색한 소위 전형적이고 특징적인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와 동시에 1800년경에 지질학적 학문문화는 19세기에 팽창하던 삽화가 있는 대중매체가 획득했던 기능을 떠맡고 있었다."

 

      반대로 문학은 재앙에 관한 지식과 보도기사를 골라내어 그것을 고유한 문학적 방식으로 각색해왔다. 여기서 문학은 위안, 노파심, 계몽 그리고 자연계의 힘과 관련하여 화젯거리에 대한 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역할들을 떠맡았다. 본 호의 기고문은 그러한 문학적 반응들에 대해서 다룬다.


○ 목차

 

1) 타오르는 불꽃에 대해서 : 보고와 미적인 도전 사이 속 재앙경험으로서의 화재 / 콘스탄체 바움

2) “번개, 천둥, 우지직, 후두둑, 탁” : 바로크 시대의 바르홀트 하인리히의 시 속 시적 거센날씨 / 알렉산더 코세이나

3) 지진에 의한 충격과 여성의 권한 : 지진-서술과 18~19세기 초의 젠더 / 가비 파일러

4) 재앙의 미래 : 율리우스 폰 포스의 소설 “이니. 어느 한 21세기 소설”(1810) / 클라우디아 립

5) 난파의 연설 : 파선-서술과 그 전환기 / 부르크하르트 볼프

6)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후 : 토마스 폰 슈타인애커의 디스토피아 소설 “파라디아스의 변호”(2016) / 카타리나 게스텐베르거

7)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의 “보이지 않은 것. 세 개의 해변에서의 수다”(2001) 그리고 “물밑의 신사숙녀”(2007) 속 익살과 재앙 / 도렌 볼레벤


< 요약정리 (Zusammenfassung) >
1. 재앙의 순환
  - 문화기억의 하나로서 재앙은 다양한 방식으로 보고되어 옴.
  - 미디어의 발달로 오늘날 재앙에 대한 소식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퍼져나감.
  - 역설적으로 재앙의 파급력이 약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근세기의 사건들은 그러한 낙관론을 부정함.
2. 재앙의 개념
  - 리스본 대지진(1755)을 기점으로 재앙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드라마적인 것에서 부정적-자연적인 것으로 변함.
  - 일례로 자연재앙이라는 단어는 19세기 중반에 처음 등장하였음.
3. 재앙의 증언과 연구
  - 증언이 없는 재앙은 전달될 수 없음.
  - 대부분의 재앙은 사건의 재구성을 통해서 비로소 재앙으로 인식됨.
  - 따라서 하나의 재앙에 대한 상이한 반응들이 존재할 수 있음
  - 그러한 반응 중 하나로 문학은 위안을 주거나, 걱정을 덜어주거나, 올바른 사실을 전달하거나, 궁금증을 풀어주어왔음. 

 

원문출처 : www.projekte.hu-berlin.de/de/zfgerm/1999-2020/heft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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