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책의 말, 그의 말, 너의 말, 나의 말 등등 그 말들의 의미가 퇴색해지면 존재하는 공간은 안락함을 잃고 만다. 그와 동시에 불편한 공기가 집-사람을 감싸든다. 집 안은 점점 위험해진다. 노라가 집을 떠난 이유다.
그렇게 떠나갔던 노라가 15년 만에 '인형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자신의 오두막집을 세워 온 노라가 돌아왔다. 돌아온 노라는 유모 마리에게 묻는다. “뻐꾸기시계는 어디 갔죠? 피아노는 어디 갔죠? 어머니의 초상화는 어디 갔죠?” 남편 토르발트에겐 요구한다. "이혼해주세요." 그리고 막내딸 에미를 설득한다. '아빠의 마음을 바꿔달라고. 결혼은 나쁘다고.' 막이 바뀔 때마다 각각의 논쟁이 펼쳐진다. 각자의 입장이 드러난다.
말들이 오고가는 공간 사이에 의자가 놓여있다. 언어의 흐름과 함께 의자의 위치와 방향도 변해간다.
의자에 앉아본다. 편히 앉아본다. 기대어 앉는다. 의자를 고쳐 앉는다. 다시 고쳐 앉는다. 기대어 앉아 본다. 의자를 돌려 앉는다. 비스듬히 앉아본다. 몸을 고쳐 앉아본다. 걸터앉아 본다. 의자를 쾅 돌려 놓는다. 의자를 당겨 앉는다. 조금 더 당겨 앉는다. 의자를 끌고 온다. 들고 온다. 마주보게 놓는다. 의자를 붙여 앉는다. 침묵. 의자를 돌린다. 살짝. 의자를 옮겨 앉는다. 다시 옮겨 앉는다. 살짝. 의자에 앉는다.
관객도 의자에 앉아 있다. S석, R석, A석. 1층, 2층, 3층. 몇 번째 열 몇 번째 좌석. 어느 좌석에 앉아있는지에 따라 무대가 다르게 보인다. 나는 A석 1층 17열 5번 좌석에 앉았다. 노라보다 토르발트가 잘 보이는 곳이었다. 실제로 토르발트에 더 가까웠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건 정말 힘들어!” 비교적 조용했던 극 초반에, 꼬르륵 꼬르륵 울어대는 배를 움켜잡고 있느라 무척 힘들었다.
15년 전, 노라가 인형의 집을 처음 떠나던 날에 토르발트는 (문 옆의 의자에 주저앉아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토르발트와 논쟁 끝에 노라는 “우리가 함께 사는 생활이 진정한 결혼이 될 수 있다면 되겠죠. 잘 있어요”라고 소리치며 떠나갔다. 더 이상 토르발트의 “작은 종달새” 연기를 하며 새장에 갇혀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5년 후, 노라는 다시 한 번 집을 떠난다. 그러나 토르발트의 모습은 그 전과 다르다. 노라와 논쟁 끝에 대화를 나누고, 손을 잡고, 문으로 함께 향한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회를 위해 나아가는 노라를 토르발트가 배웅해준다. 의자를 바꿔 앉을 순 없더라도, 반복해서 고쳐 앉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멋진 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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