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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무용 관람] E-conscious Dance Project, Utopia : [고래] (평화문화진지), 190531

by 세바스티안 브란트 2022. 4. 8.

 

E-conscious Dance Project의 무용 공연 'Utopia : [고래]' 팜플렛 사진


옛 대전차 방호시설의 핏기 없는 시멘트 위로 고래 한 마리가 헤엄친다. 탱크를 보관했던 공간 속에 고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맞은편 벽 중앙 상단부에 검은색 배경의 스크린이 걸려있다. 화면 속에서 하양, 노랑, 파랑, 빨강의 4가지 색 물결선이 뒤엉키며 흘러갔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왼쪽은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평화문화진지의 대전차 방호시설의 모습. 탱크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된 군사시설이었다. 오른쪽은 평화문화진지 야외에 전시된 탱크.


하얀 옷의 무용수가 보이진 않지만 들을 수 있는 그 존재와 움직임으로 교감하기 시작한다. 손가락 하나하나로 허공을 더듬으며, 그 생명체를 찾아간다. 심해에서 길러 와 깊게 내쉬는 날숨. 어느새 무용수의 호흡이 고래의 그것과 닮아져 있다.

이어서 노란 옷의 무용수, 파란 옷, 빨간 옷의 무용수가 시차를 두고 등장한다. - 그들은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 몇몇은 무대를 향해 걸어가다 순간적으로 뒤돌아선다. 관객석을 응시하는 그들의 시선에는 현실과의 분리로 인한 두려움과 현실을 향한 지탄, 그리고 촉구가 서려 있다.

4명의 무용수가 한 데 어울려 제각기 유영한다. 유사한 색과 유사한 흐름으로 스크린과 무용수들이 중첩된다. 무당의 무복과 굿판이 연상된다. 상상 속 대상을 비현실에서 현실로 존재케 하는 '포이에시스(ποίησις)'의 힘이 실현된다. "실재하지만, 환상 속의 동물"인 고래의 영혼이 무용수들을 매개로 하여 이곳에 드러난다. 고래'같은' 무용수들이 춤을 춘다.

동시에 고래와 접신한 무용수의 무대도 그 성질을 달리한다. 고래의 활동영역은 "인간이 갈 수 없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깊은 바닷속"이다. 존재하지 않은 환상의 공간, 유토피아와 같다. 때문에 공연장은 고래가 상연됨과 동시에 심해이자 유토피아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관객은 유토피아를 감지할 수만 있다. 무용수의 상반신은 고래와 겹쳐있지만 하반신은 여전히 땅을 딛고 서있기 때문이다.

 

평화문화진지는 원래 6.25전쟁 이후 북한군의 재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지었던 대전차 방호시설을 문화예술공간으로 재창조한 곳이다. 전쟁과 분단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에서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그렇다면  E-conscious Dance Project가 상상하는 유토피아의 그림자는 어떠한가? 두 가지 장치를 통해 그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1) 배경음악 : 전반적으로 잘게 쪼개지는 트랩 같은 비트가 사용된다. 장소의 역사성 때문일까? 기관총의 연사음이 떠오른다. 비트의 중간마다 로보틱한 보컬의 가사가 나온다. '나의 소유(my)'가 두어차례 '부정(no)'되고, '우리(we)'가 선언되길 반복한다. 그리고 "아마도(maybe), 우리는(we), 볼 것이다(will see), 반드시(must), 그때(then)"라는 단어들이 조합되고 연결된다. 보컬은 짧은 음절의 단어들을 통해 멜로디가 아닌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2) 몽타주 : 흰옷의 무용수가 앉아서 손을 이용하여 독무 한다. 손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섬뜩하게 웃는다. 손으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진짜 얼굴을 포옥 가린다. 좌우로 몸을 흔들며 웃는다. 손으로 양 눈을 가리고 손가락을 깜빡인다. 그리고 손으로 전화기를 만들어 귀에 갖다 댄다. 그 상태로 얼굴만 돌리니 새끼손가락이 입 가운데 놓인다. 곧바로 전화기가 총 모양으로 바뀌고 이마를 겨눈다.


공연 막바지에 2~3명의 무용수가 손을 모은다. 갑자기 흰 옷의 무용수가 그 손을 뿌리치고 얼굴이 보이지 않게 뒤돌아서는 시선을 위로 향한다. 나머지 무용수들의 시선은 관객을 향한다. 시선들이 말한다 : 어디에도 없는 곳, 유토피아가 실현될 수 있을까? 지금 그곳에서 계속 살길 원하는가?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나?

 

E-conscious Dance Project의 무용 공연 'Utopia : [고래]'는 평화문화진지 2기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구심求心과 원심遠心》 중 하나의 무대였다. 해당 프로그램의 취지는 "구성원과 공간을 찾는 시민들이 서로에게 구심과 원심이 되어 만들어 낸 힘과 시간을 담은 결과물을 나누며 또 다른 상호작용을 만들어 나가고자" 함이었다.

 

E-conscious Dance Project 소개 (사이트 '문화N티켓'의 '문화단체 이야기'에서 발췌) :

E-conscious dance project는 Essayistic과 conscious의 합성어로 자각하는, 의식이 있는, 개인적인 색채가 짙은 작가라는 다중적 의미이다. "무용예술에 대해 스스로 작가적이다" 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구성원은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전공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무용수들은 한국 춤의 어법을 철저하게 습득하여 한국과 동양의 정체성과 전통, 고전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또한 국내 실력 있는 현대무용수, 현대무용 안무자들과의 공연과 협업을 통해 서양과 현대의 사조를 습득해 왔다.
 
아시아 국제예술제 우수작품상, 동아시아 국제플랫폼에서 Best Picture Award를 수상했으며 국내활동과 함께 Edinburgh festival (ENGLAND), Project 840 Art festival (SWITZERLAND), International Performing Arts Festival (JAPAN) 등 다양한 해외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Shyness", "Liberty", “누명”, "유토피아:[Utopia]" 이 있다.

※ E-conscious Dance Project 인스타그램 주소 : @ecdp_danceproject https://www.instagram.com/ecdp_dance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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