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찰과 묘사 : 작게 빛나는 보석을 바라보는 남자. 보기 힘든 얼굴을 바라보는 여자
칙칙한 무채색 자켓을 입은 남자와 세련된 꽃무늬 녹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 두 사람이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 있다. 남자 옆에는 저기 저 새들을 관찰하기 위한 망원경이 놓여있고, 여자는 금색 빛을 내는 보석을 손가락 사이로 쥐고 있다. 남자의 시선은 반짝이는 물건을, 여자의 시선은 남자의 얼굴을 향하고 있다.
남자는 너무 추하고 여자는 너무 아름답다. 남자는 못생겼지만 타고난 영리함으로 세상을 헤쳐왔다. 남자는 생김새와 상관없이 생태계에서 각자의 고유한 역할을 가진 자유로운 새들을 동경하고 탐구해왔다. 그의 독특함에 반해 먼저 다가온 이성들이 여럿 있을 정도로 남자는 지적인 면에서 권력을 지녔다. 그는 꽤 성공한 조류학자가 됐다.
여자는 미모가 너무 뛰어난 나머지, 어릴 때부터 주위의 시샘을 받아왔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아름답지만 멍청한, 아무 말도 할 줄 모르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고답적인 공주 이미지에 가두었다. 여자는 사랑에도 빠져봤지만, 이용당하고 배신당해 상처를 받았다. 할머니의 영향으로 보석에 관심이 생긴 그녀는 꽤 성공한 보석 모델이 됐다.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웬만한 이야기는 묻히기에 십상이다. 살아남기 위해 어느 한 방송국은 남자와 여자를 함께 출현시키는 프로그램을 계획한다. 추남과 미녀의 만남. 진부하지만 끊임없이 회자하는 소재다. 지성과 아름다움이 양극단에 위치한 권력이기 때문일까? 방송시작 직전, 남녀는 대기실에서 마주친다. 두 권력의 첫 충돌.
하지만 충돌과 동시에 양쪽 권력은 파괴된다. 남자가 여자의 재치를 알아봤고, 여자가 남자의 공작새 같은 면모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이로써 권력을 지탱하던 지지기반이 무너져 내리게 되어 두 사람은 독점에 실패한다. 실패지만 전혀 슬프지 않은 실패. 왜냐면 전에 그들이 소유했던 독점은 선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연이 주재하는, 아쉽더라도 어쩔 수 없는 영역일 뿐이다.
연극 『추남, 미녀』의 원작은 아멜리 노통브의 『도가머리 리케(한국에는 “추남, 미녀”라는 제목으로 소개)』라는 소설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17세기의 프랑스 동화 『도가머리 리케』를 모티브로 삼았는데, 못생겼지만 똑똑한 왕자와 이쁘지만 멍청한 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그 줄거리이다. 이 동화는 왕자가 공주를 현명하게 만들어주고, 공주는 왕자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며 끝난다. 상대가 갖지 못한 것을 서로가 채워주는 사랑이 알레고리적으로 제시된다.
작가는 이 동화에서 추남과 미녀라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똑같이 다루진 않았다. 그녀의 변형은 이렇다. 남자는 세상의 기준에 외모가 규정됐고, 여자는 그 기준에 지성이 규정됐다. 전자는 존재가 조작됐고, 후자는 비존재가 조작됐다. 조작을 바꾸기 위해선 다른 조작이 필요했다. 남자는 휘어진 등을 펴기 위해서 학창시절부터 갑옷 같은 교정기를 착용해왔고 물리치료도 받았다. 여자는 할머니의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보석을 통해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자기에게도 보이지 않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간직해왔다.
첫 만남에서 둘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 ‘본모습’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 ‘지금 가진 모습 그대로’라는 표현이 적합하게, 발견하고 발화로써 그것을 긍정한다. 운명은 둘을 대기실 밖으로 내몰았으며, 두 사람은 구경거리가 되기를 거부했다. 평생을 시달려 온 지긋지긋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길 택했다. 바깥에는, 여러 색조명이 둘 앞에 놓인 벽면을 비추고 있다. 둘은 색안경을 벗겨 내듯 벽을 들어 올린다. 벽 뒤엔 유리액자가 있는데,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둘러싸고 있을 법한 테두리를 하고 있다.
남녀는 나란히 거울 앞으로 향한다. 각자 거울을 바라본다. 스스로를 응시하는 각자의 표정은 결연하다. 중간에 한 사람이 거울을 통해 옆 사람을 곁눈질한다. 거울을 통해 옆 사람도 다른 사람을 엿보아본다. 살짝 웃음을 먹은 얼굴로 거울을 거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웃는다. 웃으며 두 사람은 거울을 밀어 거울 저편으로 넘어간다.
거울에 비친 대상은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거울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거울에 금이 가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래서 둘은 금이 간 거울을 버리고 서로를 바라본다. 남자에겐 여자의 존재가, 여자에겐 남자의 존재가 거울이다. 그것은 내가 원해왔고 지키고자 애썼으며 힘써 노력한, 즉 꿈꿔왔던 존재가 됐음을 증명해주는 증거이다. 여기선 - 샤를 페로의 동화와는 달리 – 서로 상대가 갖고 있는 것을 알아봐 주고 인정받는 사랑이 알레고리적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의 얼굴 대신 손가락 사이의 보석을, 여자는 하늘의 새 대신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다.
2. 연출기법의 파편 : 함께 섞어내지 못해 튀어나온 것들
1) 드문 드문 떨어져 있는, 규칙 없이 설치된 가구들은 배우가 논리를 비약하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드나들 수 있게 해준다. 논리의 비약이 줄 수 있는 당혹감과 어색함을 무대가 감싸준다.
2) 시는 너무 적게 말하고, 소설은 너무 많이 말한다. 그리고 희곡은 말할 수 있을 만큼만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연극화 작업은 약속된 험난함을 통과해야만 한다. 『추남, 미녀』의 연출가는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브레히트의 서사극적 기법과 유사하게 극 중에 화자를 도입하는 방법이 선택된다. 상황으로 재현되지 못한 부분들은 1인칭 주인공 시점 또는 인물의 방백과 다큐멘터리의 인터뷰 형식으로 전달된다. 후자의 경우, 인터뷰를 연기하는 배우와 그것을 촬영하는 화면이 무대에서 동시에 상연된다.
3)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이 지루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다른 말로 관객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장치가 사용된다. 일례로 힙합씬이 등장한다. 갑자기 익숙한 비트가 흘러 나온다. 남자는 랩으로 창모의 ‘마에스트로’ 비트 위에 자신의 과거를 내뱉는다. “그게 내 1악장!”
4) 연극이 중반에 이르기 전에 여배우가 여주인공의 돌아간 할머니를 연기하면서 사춘기 여자아이들의 특징을 얘기한다. “사춘기 소녀들이 좋아하는 것은 말이야, 인기 많은 남자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또래 여자아이라는 거야!” 관객이 웃는다. 이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알아듣는구먼~ 오늘이 더 똑똑한가 보네!” 이는 아주 영리한 장치인데, 관객에게 연극이 연극임을 상기시켜줄뿐더러, 관객을 칭찬해줌으로써 특별함을 느끼게 해주고 더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장치가 한 두 개 더 배치되어 있었다.
5) 마지막으로 큰 주제 표현법. 이 작품은 극중인물의 추함과 아름다움을 배우의 외모가 아닌, 추함과 아름다움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강조한다. 이때 단지 두 명의 배우로 족히 10명은 되는 주변인물이 되살아난다. 서사의 흐름은 두 사람의 과거가 번갈아 가며 진행되는데, 남자는 과거에서 현재로, 여자는 현재에서 과거로, 그 시간의 방향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극단의 다름이 강조되는 동시에 반대의 반대가 반사되고, 스쳐 가고, 얽혀지는 효과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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