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피렌체 출신의 작가 카를로 로렌치니 Carlo Lorenzini는 '콜로디 Collodi'라는 필명으로 「피노키오의 모험 Le avventure di Pinocchio」이라는 장편 동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원래 콜로디는 빈부격차나 자녀교육 등 당시에 심각하게 대두되던 사회문제를 다루기 위해 피노키오 이야기를 구상하고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어느 어린이 신문의 편집장 권유로 작품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수정하였다. 그리고 이 글을 '어린이를 위한 신문'에 연재했고, 그 연재 글을 모은 것이 바로 위의 책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작품의 생성배경을 통해 - 놀랍지는 않지만 - 피노키오가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
원작과 유사하게, 이스라엘 출신의 안무가 야스민 바르디몽 Jasmin Vardimon의 「피노키오」 역시, 그녀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어린 관객들에게도 적합한 작품"을 목적으로 창작됐다. 이러한 특징은 이 무대가 'bOing!'이라는 이름의 켄트의 국제적 가족 축제에서 성황리에 초연됐다는 점에서도 뒷받침된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야스민 바르디몽의 연출은 나무 인형이 인간의 감정을 배워가며 사람이 되어간다는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러나 종래의 피노키오 이야기가 대부분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영화와 같은, 비교적 물리적 한계에서 자유로운 장르를 통해 재탄생된 반면, 이 작품은 '무용극'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공연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목각인형 마리오네트를 모방하고 흉내 내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피노키오는 즐거움, 서운함, 욕심, 외로움, 사랑 등 인간의 감정을 배워가는데, 그때마다 점점 배우의 걸음걸이나 행동거지가 인간과 닮아간다. 처음에 두 발로 섰을 때 휘청거리던 팔과 다리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러한 신체표현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이번 공연을 감상하는 묘미였다. 피노키오를 연기한 배우는 정말 인형 같았다!
어린이를 위한 무용극에서 중요한 요소들은 무엇일까?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풍부한 볼거리. 계속해서 놀라움을 자아내고 웃음보를 터트리는 익살스러움. 마지막으로 어른들 사이 껴,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지루함. 공연이 끝난 뒤 춤추듯이 로비에서 무대 위 동작들을 따라 하는 아이들이 한편으론 부러우면서 너무 이뻤다. 저렇게 마음껏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그리고 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괴테는 말했다. "그렇게 아이와 백성들은 위대한 것을 돌본다. 고귀한 것을 연기로, 또 익살스럽게 바꿔가면서.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것들이 유지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So pflegen Kinder und Volk das Große, das Erhabene in ein Spiel, ja in eine Posse zu verwandeln; und wie sollten sie auch sonst imstande sein, es auszuhalten und zu ertragen!"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 2장의 맨 마지막 구절) 저렇게 춤추고 뛰노는 아이들이 있기에, 학교 잘 다니고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피노키오의 고리타분한 교훈에도 생기가 돋아난다. 모름지기 예술은 살아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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