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듣기) 전에 잘 예습하고 / Habt Euch vorher wohl präpariert,
단락들을 잘 익혀라 / Paragraphos wohl einstudiert,
나중에 쉽게 알아차리기 위해 / Damit Ihr nachher besser seht,
그는 책에 있는 것 외에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 Daß er nichts sagt, als was im Buche steht“
(Faust, Goethe)
이 구절은 파우스트로 변장한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배움을 구하고자 멀리서 찾아온 학생에게 장난기 섞어 건넨 조언이다. 운좋게 수강신청에 성공한 <라틴어 수업 (이하 라틴어)>의 저자이자 바티칸 변호사 한동일 선생의 신작 특강이 끝나고 파우스트가 왜 고전인지, 왜 오늘날에도 읽어야 하는지 새삼 느꼈다.
대부분의 시간이 거의 책 내용 복습으로 할애되었지만 (책을 읽어준다는 인상을 받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저자의 개인적 여담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또한 혼자 책을 읽었을 때 이해가 가지 않았던 ‘법과 종교의 분리 2단계’에 관해서 질문도 하고, 저자로부터 직접 답변을 듣고 이해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수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역시나 강의의 묘미는 강연자가 틈틈이 해주는 ‘딴 얘기’와 ‘질의응답시간’이 아닐까?
여하튼 많지 않았던 ‘딴 얘기’ 중에 책 출판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가장 흥미로웠고 기억에 남아 공유하고자 한다. 이 글은 서평이 아니라 강연후기이기 때문에 “신성한 정신을 받아 적듯 (Als diktiert, Euch der Heilig Geist!)” 필기한 강의록을 요약할 필요는 없으리라. 물론 이 뒷이야기도 책에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출간이 늦어졌는데”라고 직접적 언급만이 피해져 있을 뿐이다.
이 날 유출된 그 사정이란 이렇다. 한동일 신부는 이미 2013년 2월에 문예림이라는 출판사에서 <유럽법의 기원 (이하 유럽법)> 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리고 2015년인가 2016년에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이 책의 개정증보판을 내기로 계약했다고 한다. 원래 이 책이 <라틴어>보다 먼저 출간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 ‘편집장의 판단’에 따라 이 책의 출판이 미뤄지고 <라틴어>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출판사는 흐름출판이라는 곳인데, 왜 회사가 다른지 그 속 내용까진 모르겠다). <라틴어>는 2017년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2018년, 바뀐 제목과 함께 <법으로 읽는 유럽사 (이하 유럽사)>가 나왔다.
나는 <라틴어>를 안 읽어봐서 잘 모르지만, 저자에 따르면 “읽기 쉬운 대중서” 성격의 교양서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서강대에서 이미 명강의라고 입소문 난 라틴어 강좌를 정리하고 엮은 책이라고 한다. 반면에 <유럽사>는 저자가 법학대학원 강의교재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에 학술서적에 가깝다. 한마디로 굉장히 딱딱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현재 인터넷 교보문고 기준, 역사부문 5위 (2018년 1월 31일 기준 4위, 네이버 검색 결과에선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음)를 달리고 있다. 덧붙여 이 날 특강에 참석한 사람들 상당수도 <라틴어> 때문에 왔다고 했다. 편집장의 탁월한 판단이 적중했다!
<유럽법>이 당시에 얼마만큼 학계나 대중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는지, 얼마나 팔렸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평점이나 리뷰 등을 가지고 추측해보건대, 거의 반응이 없었던 것 같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잘 팔리는 책은 잘 팔리지 않은 책도 잘 팔리게 한다.” 로마법, 교회법, 보통법을 관통하는 서양 법제사의 변천과정과 더불어 <유럽사>의 변천과정이 작금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조언을 던져주는 것 같다.
한동일의 <법으로 읽는 유럽사> 추천하는가?
: 유럽법과 관련된 중요한 서적들의 이름과 핵심적인 주제들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추천하나, 가벼운 마음으로 유럽의 역사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라틴어로 된 법조문과 관련 글들의 원문과 번역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책을 통해 서양 법제사의 흐름을 어느 정도 훑어볼 순 있으나, 그 변천과정을 세세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 감히 추측하건데 - 한동일 교수는 자신의 방식대로 유럽법의 역사를 풀어가지 않고, 자신이 원서로 접한 유럽법의 여러 개론서들을 번역 및 짜집기하여 이 책을 작성한 것 같다. 그 발췌와 짜집기 사이에 저자의 주해가 내용의 이해를 방해하고 책 읽기가 어려울 만큼 부족하다. 정리하자면, 책의 내용 정리가 너무 난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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