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a.
국내소식 1976년 5월 31일
관련 : 하이데거
【獨 원문】
HAUSMITTEILUNG Datum : 31. Mai 1976
Betr. : Heidegger
* "Betr."은 betreffend 또는 betreffs 의 약어로, "관련되는" 또는 "관련" 이라는 뜻이다.
1a.
“또 하나의 신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193쪽)라는 제목 아래, 이번 호에서 발표되는 하이데거와의 슈피겔-인터뷰는 철학자의 양보 없는 요청에 따라 그의 사후에 공개될 수 있었다.
【獨 원문】
Das SPIEGEL-Gespräch mit Martin Heidegger, das in diesem Heft veröffentlicht wird ("Nur noch ein Gott kann uns retten, Seite 193), durfte nach dem strikten Wunsch des Philosophen erst nach seinem Toede ans Licht.
* 형용사 "strikt"의 번역이 가장 고민됐다. 보통 "엄격한"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지만, 피수식어인 "요청"이 "매우 엄하고 철저하다"는게 어색하다고 생각했고, "물러섬이 없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양보 없는"으로 옮겼다.
1b.
지난 수요일,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실존주의자 중 한 사람인 하이데거(1889년 8월 26일 메스키르히 출생)가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獨 원문】
Heiddeger, geboren am 26, September 1889 in Messkirch, ohne Zweifel einer der in Deutschland, erst recht international wichtigsten Existentialisten, starb am vergangenen Mittwoch in Freiburg.
* 여기서 "지난 수요일"의 정확한 날짜는 1976년 5월 26일이다. 위치는 아래 참조.
2a.
전사(前事) : 1966년 3월, 하이데거는 슈피겔지에 독자편지를 보내왔다. 거기서 그는 제3제국 시기 그의 행실에 관해 유포되고 있는 몇몇 문헌자료 속 진술들에 대해서 반박했다.
【獨 원문】
Zur Vorgeschichte : Heidegger hatte im März des Jahres 1966 an den SPIEGEL einen Leserbrief gerichtet, in dem er einigen in der Literatur kolportierten Angaben über sein Verhalten im Dritten Reich widersprach.
2b.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20년간의 침묵 이후 나치문제와 관련된 유일무이한 조치였다.
【獨 원문】
Das war ein für ihn einzigartiges Verfahren nach zwanzig Jahren Schweigsamkeit zu diesem Thema.
2c.
동시에 이러한 독자편지는 우리들(슈피겔)에게 하이데거가 비난들에 대해서 입장을 밝힐 준비가 됐음을 나타내는 조심스러운 암시로 여겨졌다.
【獨 원문】
Zugleich war dieser Leserbrief wohl as ein vorsichtiger Hinweis an den SPIEGEL gemeint, dass Heidegger bereit sei, sich zu den Vorwürfen zu äussern.
2d.
1966년 9월, 루돌프 아우그슈타인과 게오르그 볼프는 하이데거와 슈피겔 대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 대담의 일련의 주제는 금세 '1933년의 문제'를 넘어섰다.
【獨 원문】
Im September 1966 haben Rudolf Augstein und Georg Wolff mit Heidegger ein SPIEGEL-Gespräch gefürht, dessen Thematik allderdings sehr bald über das Jahr 1933 weit hinausging.
* "'1933년의 문제'"를 넘어섰다는 것은 대담의 내용이 나치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그 이상을 다뤘다는 뜻이다.
* 루돌프 아우그슈타인은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슈피겔지의 창간인 중 한명이었다.
* 게오르그 볼프는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전(前) 나치친위대의 최고돌격지도자였다.
2e.
본 대담을 일찍이 공개하자는 제안을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단호히 거절했다 : "오만이나 고집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제 작업에 대한 걱정 때문입니다.
【獨 원문】
Dem Vorschlag, das Gespräch früher zu veröffentlichen, widersetzte sich Heigger entschieden : "Es ist weder Stolz noch Eigensinn, sondern alle die Sorge für meine Arbeit.
2f.
그 작업의 과제는 몇년간 점점 간단해졌습니다. 즉 사유에 영역에 있어서는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獨 원문】
Deren Aufgabe ist mit den Jahren immer einfacher, und das heisst im Felde des Denkens : immer schwerer geworden."
* 1960년대 후반에 하이데거가 무엇에 대해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3a.
문화면
하이데거 : “나의 경우에 대한 해명” 193쪽
【獨 원문】
KULTUR
Heidegger : "Aufklärung meines Falles" Seite 193
3b.
슈피겔 대담에서 하이데거가 제3제국 시기의 그의 입장에 대해 밝힌다.
【獨 원문】
In einem SPIEGEL-Gespräch erläutert Heidegger seine Haltung im Dritten Reich.
3c.
여기서 그는 반유대주의적 태도를 취했다는 비난에 반박하지만, "인간적인 과오"였음을 시인한다.
【獨 원문】
Er widerspricht darin dem Vorwurf, er habe sich antisemitisch verhalten, gibt aber "menschliches Versagen" zu.
3d.
그는 (사후에 처음으로 공개될 수 있었던) 이 대담을 "나의 경우에 대한 해명"을 위한 기고라고 이름 붙였다.
【獨 원문】
Er nannte das (erst post mortem zu veröffentlichende) Gespräch einen Beitrag zur "öffentlichen Aufklärung meines Falles".
* 라틴어로 "post"는 "~ 후에" 또는 "~ 뒤에"라는 뜻을 가진 목적격 지배 전치사이다. "mortem"은 죽음을 뜻하는 명사 "mors"의 목적격 단수 형태이다.
< 내용요약 (Zusammenfassung) > 1.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하이데거가 자신의 나치 행적에 대해서 말함. 2. 하이데거,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으나, 몇몇 인간적인 실수에 대해선 인정" |
※ 원문출처 : https://bublitz.org/wp-content/uploads/2018/03/Heidegger-Spiegel-31-05-197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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